Publication

미술과 건축을 넘나드는 강예린, 이치훈

 

매체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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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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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매일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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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건축사사무소 SoA(Society of Architecture)의 강예린, 이치훈 건축가는, 두 사람의 공동 설계를 영화의 공동 시나리오 작업에 비유했다. 두 사람 중 누구든 첫 스케치나 모티프가 되는 특징적 공간 표현에서 출발하면,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한 문서(원고)에 접근하듯이 설계 개념화 작업을 하고 도면이나 시스템화는 협업으로 진행한다.

 

강예린은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했다. 공간에 기반한 사람들의 삶을 배웠다. 도시, 입지, 경관, 장소 등은 건축과 동일한 주제였으며 언어가 같았다. 건축을 이해하는 배경 지식을 쌓은 셈이다. ‘장소’와 같은 공간 환경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반대로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바꾸는 공간에 대해 상대적으로 익숙했다. 약 4년간 국내외 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거쳤다. 이치훈 또한 비슷한 기간만큼 국내 대형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대형사무소는 설계 단계가 세분화돼 대부분 기획 수준에서 아이디어만 소진돼 작품으로 구현하고 싶은 자신의 열망에 미치지 못했다.

 

문화역 서울 284에 설치 전시한 <인생사용법-Valet Dymaxion>(2012)은, ‘도시적 발레파킹’의 적나라한 현상을 보여준다. 강남의 발레파킹은 빈 땅에 필요할 때마다 주차하는 일종의 의자뺏기 놀이다. 서울 강남 신사동 일명 가로수길을 사례로 선정했다. 늘어나는 핫한 레스토랑과 카페의 과밀성장, 강남의 격자 구조, 인근 아파트 및 상가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 확대, 대형 교회와의 주차 다툼, 시간대별 잉여 공간, 일방통행로 등의 변수는 ‘발레 아저씨’들의 동선 중심의 지도를 만들어냈고, 도시와 건축이 해결하지 못하는 주차를 식사 시간마저 줄인 싼 인건비의 인력들이 투입돼 가로수길 경제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야 시간대 도심과 베드타운을 연결하는 대리운전과는 다른 행태의 지리경제적 현상이다.

 

인생사용법 Valet Dymaxion / 사진제공: 에스오에이

리서치 프로젝트인 <도서관 산책자>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게 ‘도서관의 접근성’이었다. 토지이용계획원에서 전국 도서관 입지를 확인하니 공원 녹지가 대부분이었다. 입지의 특성이 도서관 형태에 영향을 미쳐 전국 도서관이 대동소이했다. 내부는 하나의 도서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똑같았다. 도서관은 사회문화적인 실체이다. 건축가는 그 공간이 마땅히 지녀야 하는 사회적 가치, 그 장소가 취해야 하는 태도를 건축물에 담아야 한다. 도서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두 건축가는 2012년 이탈리아국립현대미술관(MAXXI)을 비롯 40여 회 전시, 공공미술 및 파빌리온(가설물) 작업 10회, 기타 전시기획 및 퍼포먼스 등 건축 이외의 활동 스펙트럼이 넓다.

 

일반 특이행동: 4개의 퍼포먼스 / 사진제공: 신경섭

 

‘일반 특이행동: 4개의 퍼포먼스'(2013)는 무용수들과 몸과 건축의 사이에 존재하는 ‘옷’이라는 제3의 매개체를 설정했다. 굳기 전의 젤라틴을 몸에 입고 움직이는 동안 표면은 몸의 형상이 되고 움직임에 주름이 잡히는 등 몸과 옷의 중간 단계가 되고, 굳어진 젤라틴은 더 이상 옷의 기능을 할 수 없는 단단한 소형 파빌리온이 된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몸도, 옷도 건축도 아닌 세 가지의 상태로 계속 변이하는 과정을 관찰하게끔 구성됐다.

 

이들이 독립사무소를 세운뒤 첫 작품은, 물성을 가진 건축이 아닌 미술 장르에 해당하는 설치 작품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 커다란 갈대발이 공중에 걸려 있는 듯한 ‘지붕 감각'(Roof Sentiment. 2015)은 여름철 미술관 마당에 물리적으로 그늘을 제공했고, 그늘 아래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을 창출했다.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도 없었던 두 건축가는 미술관 방문객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미술관 주변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한옥 지붕군이 눈에 띄었다. 건축적으로 전시 장소의 맥락을 고려하고 건축물 요소를 극단적으로 분해, 전혀 건축적이지 않은 재료인 갈대로 엮은 발을 생각해낸 것이다.

 

지붕 감각 / 사진제공: 신경섭

 

이러한 미술적 작업은 본격적으로 추진할 건축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며, 실제 적용될 것이다. 건축 모티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전시 공간, 가구디자인, 도서관의 관계를 <미묘한 삼각관계>(2015) 타이틀로 서울 시립미술관 내 50㎡ 공간에 두 건축가는 당시 파트너였던 이재원과 함께 전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는 아시아 삼국의 미술교류와 현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됐다. 아카이브는 자료의 전시와 함께, 검색과 자료 열람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라운지의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 책의 표지가 직접 독자를 맞이하고, 각 연대별로 자료의 분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의 진열이 곧 연대별 자료 분포의 그래프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이 그래프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자료 검색과 구독을 입체화된 공간의 경험으로 전환한다.

 

성 평등 도서관, 여기 / 사진제공: 신경섭

1005㎡ 공간에서 펼쳐진 ‘성 평등 도서관, 여기'(2015)는 라키비움(library+archive+museum)이다. 즉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적극적으로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책과 자료를 큐레이팅하는 성격을 띤다. 공간을 계획하면서 중점에 둔 것도, 책과 자료가 ‘보여지는 방식’이다. 도서관 가운데서 사방으로 조금씩 자라나는 책장은 의자가 되고, 책상이 되고, 전시대가 되고, 벽 서가가 되고, 혹은 책장끼리 모둠을 이뤄 가운데에 책 읽는 자리를 둔다. 벽을 치고,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인 책을 읽는 가구가 조금씩 모여서 공간을 모둠해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계획했다. 이어지는 책장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들이 일련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던진 메시지는, “미디어가 가야 할 공간이 어디냐?”하는 것이다. 도서관은 마지막 남은 공공 공간이다.

 

공유주택 일명 토끼집(The Rabbit. 2015)이 위치한 서울 남가좌동은 단독주택의 박공지붕과 이 지붕을 흉내 내어 옥상 패러핏 옆에 처마처럼 기와를 붙인 다세대 주택의 정체 모를 외관이 함께 공존한다. 필로티 다세대주택이 드물고, 건너편에 뉴타운 아파트들이 함께 있는 생경한 장면이 설계의 모티프가 되었다. ‘누적되어 온 모여 살기의 시간성’이 주제가 되었다.

 

미색의 기울어진 벽돌 매스 두 개가 솟아 있어 토끼집(The Rabbit)이라고 불린다. 단독주택 두 채가 나란히 공중에 올려 있는 모습이다. 강예린, 이치훈은 ‘주거지의 밀도는 숫자의 공학을 넘어서 모여 살기의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도시의 밀도와 삶의 밀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에 건축이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파주 Studio M / 사진제공: 신경섭

파주 출판도시 Studio M(2017)은 영상 특수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의 스튜디오 및 사무실, 기숙사로 계획된 건물이다. 필지가 삼각형으로 한쪽 모서리에 두 개의 간선도로가 예각으로 교차한다. 대지로 접근하는 어느 방향에서도 정면성을 갖기 힘든 조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건축물은 반원 형태로 배치되었다. 각 층이 동일한 방식의 평면형식으로 구성되고, 위로 갈수록 조금씩 외부로 볼륨을 키워가며 대지의 조건에 단순하게 대응한다. 이를 통해 건물은 도시에 순수한 형상과 부피만을 드러내도록 한다. 예각의 간선도로가 교차하며 돌아가는 입면의 경우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시선의 흐름과 운동성을 반영하도록 하였다. 휘어진 면을 따라 가로로 긴 창과 테라스를 계획하고 외벽 마감으로 쓰인 벽돌이 점진적으로 스크린화되며 테라스의 난간이 되거나, 창을 감싸는 더블스킨이 되어 덩어리감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M사옥은 내외부의 경계를 극명하게 분절하고 형태만을 건축의 의도로 드러냄으로써 도시에 대응하는 하나의 태도를 보여준다.

 

신촌 청년문화 전진기지 / 사진제공: 신경섭

 

서울 신촌 청년문화 전진기지(2019)는 서대문구의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복합문화 공간이다. 인근의 홍대·망원동과 비교, 젊은 층을 유입하려는 목적의 건축을 원했다. 공모 당시에는 제한이 없었으나 건축도 파빌리온도 아닌 그 무엇과 공원 사이로 개념이 바뀌었다. 재설계를 해야 했다. 문제는 매스를 배치하는 위치였다. 대안을 100가지 넘게 검토했다. ‘청년’이라는 주제는 옵션이었다. 공원과 열려 있는, 소통되는 무엇이었다. 건축가들은 파빌리온 작업을 많이 했기에 창과 벽을 없애는 방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놓아야 되는지 고민했다. 강관을 금속처럼 보이지 않게 노력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다. 골목마다 들어선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은 과거 동네 공장이 가득했던 후락한 성수동의 이미지를 뒤바꿨다. <성수 싸일로: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는 필지들이 큰, 성수사거리 인근 2711.51㎡ 규모의 준공업지역으로 금속, 패션, 수제화 등 사업자들이 입주하는 아파트형 공장이다. 기존 건물의 적벽돌 벽체만 보존하며서 관련 업종의 서비스 공간을 전면에 배치하는 설계 개념이다. 이를 위해 이동 수직동선을 바깥으로 배치했다.

 

성수 싸일로: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 조감도 / 사진제공: 에스오에이

브릭웰(Brickwell. 2020)이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은 조선 시대 창의궁 터였다. 숙종의 차남으로 태어난 영조의 잠저(潛邸)가 있던 곳이다. 잠저는 왕세자(王世子)와 같이 정상법통(正常法統)이 아닌 사정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 필지로 개발되었다. 건축주는 고사한 ‘백송 터에 정원을 가진 사옥’을 원했다. 백송 터 주변에는 여러 그루의 백송이 심어져 있다.

 

건축가는 어디를 어떻게 비워내느냐에 따라 거주자와 방문자가 각각의 경험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건물을 관통하는 중정을 만들고 1층을 필로티로 만들어 백송 터로 열린 형태로 설계됐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민원 제기하던 이들이 비워낸 1층에 정원이 들어서자 작업자들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어차피 건폐율을 맞추기 위해서도 공간을 비워야 했다. 직사각 안에 원형의 평범한 평면이다. 조경 전문업체는 야광나무, 수련, 털부처 등 대부분 꽃이 피면 하얀색 계열의 수종을 선택했다.

 

브릭웰 / 사진제공: 신경섭

브릭웰 / 사진제공: 신경섭

건축가로서 수공간 정원은 어려운 주문이다. 정원을 백송 터와 어울리는 북쪽에 배치키로 하고 뷰를 끌어들이도록 벽돌로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는 원칙을 세웠다. ‘가든’은 ‘내가 즐기는 공간’이라는 개념이다. ‘퍼블릭 가든’의 성격을 갖도록 유도하였다. 건축가는 이 정원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정원을 아래에 두고, 네모난 건물의 일부를 꼭대기(4층)까지 원통형으로 뚫었다. 이 뚫린 원형 중정을 둘러싸고 층마다 테라스가 있다. 여기서 정원을 내려다보면 우물(well) 속 같다.

 

벽돌 사이에 모르타르를 채워 쌓는 습식, 벽돌이 구슬인 양 파이프에 꿰듯 쌓는 건식 공법을 함께 썼다. 4층 천장은 박공 형태로 모두 건식 벽돌 시공으로 완성됐다. 원하는 방향대로 벽돌을 잘랐다. 벽돌은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각도에 따라 물결치는 것 같다. 시공사를 잘 만났다. 벽돌공·석공·금속팀 등과 협의하며 디테일을 풀어갔다.

 

[프리랜서 효효]